예전에 만화가 이종범 님이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다.
"학창시절에 만화 그리는 사람 많잖아요. 이게 만화가 좋아서 하는 건지, 아니면 공부하기 싫으니까 차선책으로 하는 일들 중에 만화가 되었는지 알 수 없잖아요. 그럼 이걸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이종범 님은 부연설명했다.
입시경쟁 속에서 공부하라는 압력을 받을 때, 각자 딴짓을 생각하기 마련이다. (여담인데, 과거엔 입시경쟁이 더욱 심했다. 숫자와 통계자료를 보면 알 수 있다. 그저 헛웃음만 나온다.)
이때, 누구는 운동, 누구는 게임, 누구는 연예인, 누구는 만화....... 뭐 이런 식으로 각자 돌파구가 될 만한 것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이것도 여담인데, 요즘엔 일률적으로 스마트폰에 빠져있다. 이건 좀 웃음이 안 나온다.)
그러니까, 말로는 만화가가 되겠다고 하지만, 진짜로 만화가가 되겠다는 의지나 열정은 없고,
단순히 돌파구 중 하나로 만화를 선택했을 경우가 많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나도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나도 학창시절 만화 동아리 활동을 했지만, 그때 함께 만화를 그렸던 사람 중 만화가로 활동하는 사람은 소수다. 대부분 연락도 끊겼고, 현재 어떻게 사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만화 쪽 일은 아닐 것이다.
과연 그 둘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이종범 님의 해답은 간단했다.
"수능 끝나고 보면 돼요."
입시라는 압력이 사라지면 반동작용으로 하던 일은 당연히 멈추게 된다.
이때 진짜 자기가 하고 싶은 걸 찾아서 하게 되는데,
본인의 경우, 공모전 일정을 확인하고, 원고 작업 계획을 세우고, 실제로 작업해서 출판사에 냈다고 했다.
얘길 듣고 보니 과연 그랬다.
대학 진학 후에 없어진 만화 동아리들이 좀 많던가.
그래서 지금 이 자리에 '만화가 이종범'이 서 있는 것이다.
어쩌면 재능이란 이런 게 아닐까.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서 하는 것 말이다.
거기에 더해, 그것이 직업이 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이다.
그렇다면 재능이 직업이 되는 것은 어떤 게 더 필요할까?
그건 아마도 하지 말라고 해도 하는 게 아닐까 싶다.
한창 만화를 그리겠다며 주변을 둘러보았을 때, 부모님의 반대로 힘들어하는 친구들이 꽤 있었다.
당시에 만화가의 인식이 그리도 안 좋았다.
이렇듯 반대를 무릎쓰고 데뷔한 사람은 정말 만화가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종류가 아니었을까.
"흑흑, 저는 만화 그리고 싶은데 집에서 반대해요...."
누군가 이렇게 고민을 털어놓으면 이를 들은 현직 만화가는 이렇게 답하곤 했다.
"우선 고등학교부터 졸업하세요. 그 사이에 습작 많이 하시고요. 만화는 나중에 독립한 후에 하셔도 됩니다."
듣는 사람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현실적인 조언이다.
이런 고민을 토로한 사람도 어쩌면 고등학교 졸업 후에 다른 길을 걸었을 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희망자는 많았지만 정작 그 끝에 다다른 사람은 적었다. 나를 포함해서.
그때 목표를 이룬 사람들은, 말하자면 만화를 그리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그럼 나는 어떤 인간일까.
가장 최근엔 작가님들과의 대화 중 이런 얘기가 나왔다.
"우리가 쓰지 말란다고 안 쓸 사람이 아니잖아요."
아, 이거구나!
깊이 공감했다.
결국 나는 글을 쓰도록 태어난 사람인 것이다.
"손꾸락을 묶어놔 봐라, 쓰나 안 쓰나."
그러네요. 아마도 쓸 것 같습니다.
안 팔려도, 누가 보지 않아도, 그래도 계속 쓰겠죠.
그래서 내린 결론은 이것이다.
아마도 나는 쓰려고 태어났나 보다.
아니, 정확히 나는,
쓰려고 태어났다.